소장품

백지묵서묘법연화경 권1-7

국보, 고려 1377년

31.8cm x 10.9cm

고려 우왕(禑王) 3년(1377)에 하덕란(河德蘭)이 전단속대선사(前斷俗大禪師) 원규(元珪)를 공덕주 삼아 돌아가신 어머니 철성군부인(鐵城郡夫人) 이씨의 극락왕생(極樂往生)과 아버지 진성군 하씨(晋城君 河氏)의 수명 연장과 안녕을 기원하며 제작한 것이다. 표지는 금·은색의 꽃무늬와 제목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고, 내용은 하얀 백지에 먹으로 썼다. 사경지인 백지는 질이 좋은 저楮를 두텁게 떠서 전면을 도침하여 사용하였다. 서체는 당시 유행한 조맹부체가 가미된 유려한 서풍으로 고려 사경체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각 권 첫머리 변상도의 오른쪽에는 석가의 설법도를 그렸는데 설법하는 석가여래와 보살, 제자, 사천왕 등이 석가를 에워싸고 있고 왼쪽에는 설법을 경청하는 청문중(聽聞衆)들이 석가와 권속을 향하고 있어 서로 마주보고 있게 배치되어 있다. 권3, 5, 6의 품제(品題) 위쪽의 서두(書頭)에는 ‘9일(九日)’ ‧ ‘18일(十八日)’ ‧ ‘23일(二十三日)’이란 날짜가 별지에 기록되어 붙어 있는데, 아마 사경의 진행과정을 날짜로 적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 권7 끝에는 붉은색으로 ‘가길 3년(1443) 2월 길일봉농’(嘉吉三(1443)年二月吉日奉籠)이라 써 있으며, 그 위쪽으로 ‘경장10년(1605) 7월(慶長十年七月)’이란 일본의 연호(年號)가 쓰여있다. 이러한 기록 내용으로 보아, 이 사경은 고려 1377년에 하덕란이 사경하여 불전에 봉안되어 오다가 세종 25년(1443)년 이전에 일본으로 건너온 내력이 주서로 쓰였고, 임난 직후인 선조 38년(1605)에 소유가 변경된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에 호림 윤장섭 선생이 직접 일본의 소장자로부터 환수한 것이다. 이 법화사경은 전권이 변상도가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으며, 한 ‧ 일간을 왕래한 전래 내력이 다사하여 매우 관심의 대상되는 바이다. 더욱이 사경의 진행과정이 날짜별로 기재되어 있어 사경 소요기간을 추정할 수 있는 희귀한 참고자료로 기대되는 매우 귀중한 국보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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